영화 취향

초속 5 센티미터 벚꽃처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아련한 이름 첫사랑

취향편집가 2022. 4. 14. 17:38
반응형


한줄평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오랫동안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너의 이름은'으로 잘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가 원작자이자 감독을 맡은 2007년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2007년의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2007년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개막작으로 처음 공개되었으며, 같은 해 6월에 정식으로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2007년 가을 경, DVD를 통해 처음 접했다.
잔잔한 감성, 색채가 너무 맘에 들어 당시 썸을 타던 여성과 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감상했던 추억이 있는 작품이다.
나 이상으로 감동받은 팬들은 작품의 배경인 철도역에 가서 직접 사진을 찍어 인증하는 등 엄청난 열혈팬을 보유한 작품이기도 하다.

신카이 마코토는 작화 배경이 되는 장소에 직접 가서 수만 장의 사진을 찍고 고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움직임보다는 정지 컷과 강렬한 채색, 시각효과를 중심으로 아름답게 화면을 꾸미는데 집중한다.
극의 흐름은 주로 주요 등장인물들의 독백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감독 본인의 말에 따르면 캐릭터의 감정 전달에서 캐릭터의 표정보다는 배경 음악이나 풍경으로 묘사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빛의 마술사 클래식 버전이 '램브란트'라면 현대 버전은 '신카이 마코토'라 할 수 있다.
도시에 비친 하늘, 사람들의 발걸음, 사소한 물건들을 지나가는 장면처럼 빛을 활용한 배경 컷을 자주 보여준다.
초속 5센티미터에서는 유독 새가 날아가는 장면이 자주 노출된다.
지하철, 철도, 기차를 자주 묘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인터뷰에서 '메카닉류를 좋아하는데 도시 배경의 작품에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철도'라서 표현하는 것뿐이고, 나가노에 살던 무렵 열차를 볼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기차를 좋아하는 것뿐이지 마니아나 오타쿠라고 부를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있잖아. 초속 5 센티미터래."
“뭐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아름다운 영상이 시작하면서 바로 제목의 비밀을 풀어준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제목만 접했을 때 단순히 일본 애니 다운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SF 장르거나 다이내믹한 액션 류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편견을 갖고 뚜껑조차 열어보지 않았다면 신카이 마코토의 팬도 될 수 없었을 거다.
감상 후 다시 들여다 보니 최고의 작명이다.
시인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작품은 〈벚꽃 이야기〉, 〈코스모 너트〉, 〈초속 5센티미터〉의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1990년대부터 2008년까지의 일본을 배경으로, 토노 타카키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하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의 배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토노 타카키의 성장과 맞물려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제1화 〈벚꽃 이야기〉

토노 타카키는 자신이 다니는 도쿄의 초등학교로 전학 온 시노하라 아카리와 빠르게 친구가 된다. 성격과 취향이 비슷한 둘은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된다.
장면 삽입
구체적인 설명 없이 독백, 편지 내용, 아름다운 배경을 통해 두 주인공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쉽게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카리는 부모의 전근 때문에 먼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
먼 거리를 두고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게 된 둘, 이번엔 타카키가 전학을 가게 되면서 큰 맘먹고 아카리가 사는 곳까지 가서 만나보기로 한다.
가장 찡했던 장면이다.
아카리에게 마음을 전할 편지도 준비하지만 폭설로 인해 가는 도중 편지를 잃어버리고, 열차는 기약 없이 지연되면서 약속 시간을 한참 넘어서야 약속 장소로 도착한다.
둘은 폭설로 인해 오두막 안에서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 잠이 든다. 타카키는 다음 날 아침 기차역에서 작별을 하고, 둘은 서로에게 편지를 하기로 약속한다.
타카키가 그의 편지를 잃어버린 것은 아카리와의 키스 이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 아카리는 타카키에게 전할 것이었던 자신의 편지를 가만히 지켜보고 이야기는 끝난다.

제2화 〈코스모너트〉

타카키는 우주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 다네가 섬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되었다.
같은 반 스미다 카나에는 도쿄에서 전학 온 타카키를 오랫동안 짝사랑하지만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졸업이 다가오는 자신의 진로에 관해서도 정하지 못하고, 취미인 서핑에서도 파도 위에 서는 것이 안 되는 슬럼프에 빠져 있다.
하지만, 타카키는 카나에에 대해 무관심하고 좋은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카나에는 타카키가 항상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멀리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카키가 졸업 후 도쿄의 대학으로 간다는 것을 알게 된 카나에는 다시 파도 위에 서서 서핑하는 것을 성공하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카나에는 다시 파도 위에 서게 되지만, 결국 타카키가 자신이 해줄 수 없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고백하지 않기로 하며, 앞으로도 사랑하기로 맘먹는다.

제3화 〈초속 5센티미터〉

2008년, 성인이 된 타카키는 건조하고 무료한 일상에 찌든 직장인 모습이다.
회색빛의 도심, 생기 없는 집안이 그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 준다.
반면, 아카리는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화사한 그녀의 표정, 기차 안에서 살짝 빛나는 그녀의 약혼반지.
역시 남자는 평생 첫사랑을 못 잊고 여자는 현재의 사랑에 충실한 것인가.
타카키는 3년 동안 사귀었던 여성으로부터 '1,000번이나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마음은 1cm 정도밖에 가까워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들킨다.
그의 마음은 현재 진행형, 아직도 어릴 적의 아카리를 쫓고 있었다.
한편, 아카리는 옛날 짐을 정리하던 중 어릴 적 타카키에게 쓴 편지를 발견한다. 그녀에게 타카키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타카키와 아카리가 십수 년 전에 함께 벚꽃을 보자고 다짐했던 철도 건널목에 들어선다. 그때 서로를 지나치면서 알아보게 된다. 상상이었을까?
철로 반대편에서 둘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지만, 지나가는 기차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타카키는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 후 아카리가 사라진 것을 바라본다.
만약 기차가 지나간 후 타카키가 달려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면?
왜 기차일까?
기차는 중학교 시절 둘 사이를 이어주면서도 장애가 된 존재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중학교 때 폭설로 인해 약속 시간을 5시간이나 넘겼음에도 타카 티는 포기하지 않았고 아카리는 기다려줬다. 그로 인해 둘은 어렵게 만날 수 있었고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둘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장애를 극복할 의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기차가 지나가고 난 뒤돌아서서 보여준 타카키의 옅은 미소는 이제 그녀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그의 다짐인 것 같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주제곡에 맞춰 그들의 과거, 현재를 뮤직비디오처럼 보여준다.
음률에 맞춰 편집된 장면 하나하나, 연출력이 돋보이는 마무리였다.
아 이대로 끝나는 건가.

 

왜 벚꽃의 속도인가?

벚꽃은 봄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너무 빨리 사라지면서 아름다움, 설렘을 짧게 보여주는 꽃나무다.
벚꽃잎은 삶의 속도와 더불어,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연상시킨다.
감독이 의도한 벚꽃과 속도는 느린 듯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아쉬운 인연을 상징하는 요소로 보인다.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다 해도 방향이 같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면 만나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반대로, 그 방향이 달라 점점 멀어지고 있다면 더 빨리 멀어질 것이다.
아카리와 벚꽃잎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며 나온 초속 5센티미터
카나에가 고백을 망설일 때 떠오르는 우주선의 시속 5킬로미터
3년간 사귄 연인으로부터 들은 말, 우리 사이는 1 센티미터밖에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초속 5센티미터 안에서의 속도는 물리적인 공간을 극복하는 속도이자 감정의 거리를 표현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있다.
한쪽은 그 안에 머무르고 다른 한쪽은 앞을 향해 나아간다.
행복하기도 방황하기도 했던 시간, 사랑하는 이들과 얽혀 있던 공간, 돌이켜보면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신카이 마코토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생에서 저마다의 속도는 다르지만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겪는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랑에 대한 방황을 아름다운 작화와 독백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제목만 보고 미뤄뒀다가 제목의 의미를 깨닫고부터 매년 이맘때 두고두고 보는 인생 애니메이션으로 남았다.
아련한 기억들을 소환해주는 영화 ‘초속 5센티미터’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