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취향

드라이브 마이카, 그럼에도 우린 살아가야 한다.

취향편집가 2022. 4. 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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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외면해 온 진실을 마주하고 삶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 

 

 

 

영화 'Drive my car'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하루키는 소설의 제목을 비틀스의 곡명에서 가져왔다고 밝혔다.

원작의 큰 줄기를 따라가고 있지만 인물들 내면에서 일어나는 섬세한 파동과 연출 장면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색깔이 잘 담겨 있다. 깐느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고 기대를 모았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국제 장편영화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이 극찬하고 이동진 영화 평론가도 경청의 걸작이라 평가하며 호평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한 여성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작한다.

역광으로 실루엣만 보이는 아내 오토는 소설을 써내려가듯 혼자 말한다.

막 정사를 끝낸 듯한 남편 가후쿠는 침대에 누운 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방송 작가로 일하는 오토는 섹스 후 자신이 구상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제는 가후쿠에게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었다.

가 후쿠는 러시아의 연극제에 초빙되어 공항으로 향하던 중 일정을 연기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오토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영화 '우나기'가 떠올랐다.

('우나기'에서의 주인공과 '드라이브 마이카'의 주인공은 같은 장면을 목격하고도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 후쿠는 아무 일 없던 듯 집을 조용히 빠져나오고 모른 척한다. 

 

 

어느 날 아침, 오토는 할 이야기가 있다며 퇴근 후에 보자는 말을 하고 가 후쿠는 불륜 사실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부러 늦게 귀가하게 되고, 지주막하 출혈로 죽은 아내를 발견한다. 

영화는 순식간에 그녀의 장례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배우들의 이름 조차 올라오지 않았음을 그때서야 알았다. 

인트로만 40분, 깜짝 놀라 러닝타임을 확인하니 3 시간 분량이었다.

영화는 이제 시작이다.   

 

 

 

 

직업이 배우인 가후쿠는 평소에는 왜 표정이 없을까?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어쩜 저렇게 침착할 수 있지?

아내의 죽음 뒤 2년이 흐르고 가 후쿠가 연출을 맡은 연극 <바냐 아저씨>의 준비 과정은 그를 더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오디션에 합격한 각국의 배우들은 일본어, 러시아어, 필리핀어, 중국어, 한국어, 심지어 수어까지 서로 다른 언어로 리딩 연습을 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가 후쿠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좀 더 내면을 들여다보길 원한다. 반복해서 대본을 그대로 읽기만 하라며 차분히 연습을 진행시킨다.

결국 배우들은 가후쿠의 의도대로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며 극의 흐름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공감하길 원하는 연출가 가 후쿠는 왜 자신의 인생에서는 그러지 못했나?

그런 그였기에 4살 난 딸을 폐렴으로 잃었을 때에도 아내와 슬픔을 깊게 공유하지 못했을 수 있다.

오토는 아마도 딸을 잃고 난 뒤의 아픔을 다른 남자와의 섹스를 통해 치유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내 오토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이었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외도를 하고 남편을 배신했지만 마음 깊이 가후쿠를 사랑했다.  

배우에서 방송 작가로 전환하면서 상상 속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습관은 영감을 얻고 상처를 회복하는 자신만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오토가 들려주는 상상 속 이야기 

한 여고생이 좋아하는 남학생의 방에 몰래 들어가 물건을 훔치거나 흔적을 남긴다.

급기야 자위까지 하게 되는데 그녀가 반라의 모습으로 있던 사이 강도가 침입하게 되고 강간에 저항하다가 강도를 살해하게 된다. 

여고생은 남학생에게 살인죄에 대해 어렵게 고백하지만 남학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반응이 없다. 

결국 여고생은 아파트 현관 앞 CCTV 앞에서 입모양으로 자신의 죄를 밝히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다카츠키로부터 듣게 되고 사실 이 결말이 정말 이야기의 엔딩인지는 가 후쿠도 다카츠키도 알 수 없다. 

그녀의 외침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가후쿠의 모습에서 여고생은 오토, 남학생은 가 후쿠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한 명의 배우이자 오토의 외도 상대인 다카츠키 

비록 불륜남이지만 그는 진심으로 오토를 사랑했다.

오토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한 가 후쿠를 질투했고 동시에 배우로서 존경했다.  

건방지긴 하지만 가후쿠의 마음을 후벼 파는 그의 대사

"아무리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에 똑같이 들어가 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정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가후쿠는 지난 시간 동안 애써 진실을 왜 면하고 오토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지 못했음을 조금씩 아는 것 같다. 

 

가 후쿠와 단둘이 술이 마시며 마음속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다카츠키는 멋대로 자신의 사진을 찍었다며 

신경질적으로 손님에게 항의한다. 

결국 또 다른 장소에서 자신을 도촬하는 한 남성을 살인하기까지 이른다.

그는 왜 사진 찍히는 일에 예민할까?

다카츠키는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우고 사람을 대할 때 교감을 중요시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동의도 얻지 않고, 당사자를 이해하는 과정도 생략한 채 몰래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다.  

 

 

가 후쿠는 15년째 타며 아끼는 차가 있다. 

클래식한 멋이 있는 빨간색 해치백 사브 900 1세대 

부득이하게 운전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에서 운전기사 미사키를 만나게 된다.  

차량 이동 중에 연극 대사를 연습하는 버릇을 갖고 있던 가후쿠는 미사키가 운전하는 동안에도 

습관을 이어나간다. 

함께 일하는 배우에게는 칭찬 한 번 없는 그지만 미사키의 운전 실력은 마치 무중력에 있는 느낌이라며 극찬한다.

미사키와 가까워 지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늘 뒷좌석에 앉던 가후쿠가 조수석에 앉았을 때 

아끼던 차 안에서 함께 담배를 피울 때 

여기에 두 사람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 죄책감을 공감하게 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나간다.  

 

왜 히로시마인가?

미사키가 가후쿠의 기분전환을 위해 데리고 간 장소는 그녀가 히로시마에 와서 처음 취업한 곳이었다.

소각 장면을 '눈'에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본이 자신들의 아픔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회복하는데 반해, 정작 침략한 피해 국가의 아픔은 외면하는 교차된 감정이 드는 씬이다. 

미사키는 살아 있으면 죽은 딸과 같은 나이인 23살의 여자였다. 

하늘로 보낸 딸이 미사키의 모습으로 가 후쿠를 이끌어 주기 위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살인죄로 다카츠키는 갑작스럽게 연극에서 하차하게 되고, 결국 가 후쿠는 그토록 꺼려했던 바냐 역을 맡는다. 

그리고 극중에서 언어 장애인인 딸 소냐의 위로를 받고 비로소 마음속 상처를 회복한다.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극 중 대사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상실감, 아내를 죽인 게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제 앞으로 나아가자는 가 후쿠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말이기도 하다. 

 

왜 다국적의 배우가 한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을까?

하루키의 작품들은 대부분 열린 결말이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본인도 밝혔듯 어떤 의도를 갖고 메세지를 이야기에 녹여내지 않는다. 

때때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곤 하는데 

류스케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좀 더 직접적으로 자국 정부에 대한 비판, 반성, 용서의 메시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연국을 준비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극중 배우들의 국적이 과거 일본이 침략한 국가임을 알 수 있다.

감독은 과거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나라의 배우들이 하는 연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 상처와 고통을 회복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영화 속 가후쿠와 미사키는 타인의 삶을 경청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억눌러 온 상처와 고통을 마주하고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 인생에서 완벽한 위로는 없다.

하지만 삶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경청과 공감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 영화였다. 

세 시간의 러닝 타임이 아깝지 않은, 22년 최고의 영화로 기억될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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