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사소한 기억도 기록하면 추억이 됩니다.

취향편집가 2022. 4. 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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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추억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기억과 그 안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추억을 쌓아간다.

기억과 추억은 사전적 의미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떠올리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거의 유사한 단어로 보인다.

하지만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감정’이다.

‘기억’이 과거의 일, 상황 등을 있는 그대로 떠올리는 것이라면 '추억'은 과거의 일이나 상황 등 과거의 것에 개인적인 느낌이 더해져 때로는 간직하고 싶은 긍정적인 기억일 수도, 반대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부정적인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해 물을 때 기억해? 기억나?라고는 물어도 추억해? 추억나?라고 하진 않는다.

아마도 정황을 묻는 기억에 비해 감정을 묻는 추억은 그처럼 복잡 미묘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장소에 방문했을 때,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록 페스티벌에서 친구들과 머리를 흔들어 댈 때의 시간이 기억에 그치기도,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추억은 그 형태와 종류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고 소중한 정도도 다르게 느끼기 마련이다.

 

 

추억, 딱히 없는데요.

 

군 시절, 경계병 이라는 임무를 맡았다.

2인 1조로 5 시간 씩 철책과 초소를 이동하다 보니 좋든 싫든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여자 친구, 학교, 걸그룹, 모 상병의 험담 얘기부터 전역 후 하고 싶은 일까지 제법 진지한 대화도 주고받곤 했다.

훗날 짬이 좀 차면서 나의 인솔 하에 철책을 돌면 후임병에게 늘 묻던 질문이 있다.

살면서 재미 있었던 추억 거리 좀 얘기해봐.

이런 질문을 하면 열에 아홉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딱히 들려줄 만한 추억이 없다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웃긴 이야기, 야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니 지어낼 것도 없고 그냥 살아온 이야기만 들려 달라,

이렇게 5 시간 씩 몇 주간 함께 근무를 서는 것도 인연이고 경직된 내무 생활로는 사람을 알 수 없으니 그들을 알고 싶었던 이유였다.

이게 더 고통이었을까.

대부분이 무척이나 난감해했고 죄송하다는 말까지 해대니 더는 그들을 괴롭힐 수 없었다.

순전히 나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엄격하고 어려운 선임은 아니었는데.

정말 그들은 스무 해가 넘게 살아오면서 추억거리 하나 없었을까

물론 굳이 나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정말 편하게 지냈던 동기나 후임들도 딱히 추억이란 게 없다고 하니

이쯤 되면 추억거리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추억, 별 거 없는데요.

 

대학 시절, 조형 수업 시간에 추억이 담긴 물건을 가져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재해석해서 오브제로 풀어보라는 주제였다.

방 안에 있는 상자들을 뒤져보며 뭐가 있을까 찾아보던 중

어릴 적에 자주 갖고 놀던 장난감 인형을 발견했다.

11살 이후로 갖고 논 기억이 없으니 14 년 만에 만져 보는 것이었다.

어머님께 이 장난감이 어떻게 아직까지 있냐며 묻자, 내가 내 아들도 갖고 놀 수 있으니 버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단다.

G.I(지아이) 유격대 라는 이름의 액션 피겨는 40 여개는 족히 되어 보였고 팔, 다리가 성한 녀석은 몇 개 없었다.

당시 나는 관상용으로 구매 한 게 아니라 물속에 넣고 바닥에 굴려 가며 이 녀석들을 괴롭혔다.

그중에 정말 아꼈던 스톰 쉐도우는 늘 스토리에 주인공을 도맡았고 각종 사연을 담아 악당들을 물리쳤다.

그가 타던 비행기는 유선형 디자인에, 화려한 패턴이 장식되어 있었고 어린이날 선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멋진 디자인의 비행기를 보며 나중에 이런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고 친구와 서로의 것이 더 멋지고 빠르다고 다투기도 했다. 한 번은 잠결에 창가에 둔 전투기의 후광을 보고 드디어 그가 나를 데리러 왔구나 헛된 꿈을 꾸기도 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많은 가혹한 사연의 주인공으로써 악당을 물리치던 그가 사실은 코브라(지아이 유격대의 적) 사령관의 경호원이었다는 배신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까지.

하나의 물건에도 이렇게나 많은 추억이 있다.

 

 

부자는 돈이 많지만 잘사는 사람은 추억이 많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 어떤 추억으로 남을지 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아니, 잊고 산다.

일상의 소중함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너무 평범해서 모르고 지나치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추억을 돌아볼 장치를 마련했다.

아이가 적은 삐뚤빼뚤한 카드, 어머님이 남긴 문자메시지, 가족들의 음성이 담긴 영상들, 아내와 연애 시절부터 담은 수많은 사진들.

느낀 감정들을 글로 정리하기도 했다.

한없이 쌓여 가는 사진과 영상은 편집을 하는 정성을 들여야 다시 찾아보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에 동의하던 나는 SNS에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잊혀질 뻔한 사소한 추억의 조각을 더 자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 했던 기억력도 떨어지면서 이 소중한 추억들이 퇴색될까 두렵다.

아내의 구박과 아이의 비협조에도 ‘사진 한 장만 더’를 외치는 이유다.

이렇게 기록한 추억은 앞으로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훗날 아이가 떠올릴 아빠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면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좀 더 노력하게 된다.

 

 

소중한 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보통 날, 너무 평범해서 소중했는지 모른 채 잊혀 가는 기억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소중한 오늘을 글로, 사진으로 계속해서 추억으로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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